김정은 정권 이후로 한반도는 이전보다 더욱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김정일 시기의 대남협박, 핵실험 등의 도발에 비해 김정은의 등장 이후로는 몇 년 안 되는 사이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사태를 비롯한 실질적 위협이 행해지고 있다. 5월 22일 오전의 연평도 주변 해상에 대한 포격으로 인해 한반도에는 다시 한 번 긴장이 감돌았다. 해외에 사는 교민들 사이에서는 “한반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한국인만 모른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의 중심에는 북핵문제가 있다. 실제로 과거 남북 간의 화해무드를 가로막은 것도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킨 것도 모두 북한의 핵문제다. 핵문제는 북한과 국제사회관계, 북미관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핵심과제이다. 그러나 기독교계는 ‘북핵반대’라는 구호는 넘쳐나나 정작 북핵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탐구는 부족했다. 이에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기독교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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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의 현황

북한의 핵개발 역사는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정전협정으로 무력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북한 김일성 주석은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핵개발에 관심을 두고 전문인력 양성을 시작했다. 1955년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에 핵물리강좌를 개설했고, 다음 해 과학원에 핵물리실험을 신설했으며 1965년 소련의 협조로 영변에 연구용 원자로를 건설했다. 북한은 1980년대까지는 원자력 기초교육과 연구에 초점을 맞추며 박천과 평산, 선천 등에 우라늄 광산과 가공시설을 마련하는 등 기본시설 구축에 주력했다.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남다른 애착은 매장량이 2천6백만 톤, 가채량은 약 4백만 톤으로 추산될 정도로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우라늄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보다 많은 우라늄을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은 원자력발전소 등 핵의 평화적 이용보다는 핵무기에 관심을 두면서 국제사회의 골칫거리가 됐다. 북한은 1986년 1월부터 5MW급 원자로를 흑연감속로 방식으로 가동했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1989년께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다. 원자로 가동 중단에 이어 북한은 1992년에는 한국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으나 이듬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특별사찰 요구에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맞섰다. 1993년 6월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NPT 탈퇴를 유보했던 북한은 1994년 이뤄진 북미 제네바 합의로 주요 핵시설을 동결했다. 당시 제네바 합의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에 2천MW 경수로 원자로를 건설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의혹이 불거지고 미국의 압박이 가중되자 2003년 1월 끝내 NPT에서 탈퇴하고 연변 원자로를 재가동했고 북미 제네바 합의는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이후 북한은 2005년 2월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했고, 그 해 5월에는 영변의 5MW급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 개를 인출하는 작업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이만한 양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할 경우 무기급 플루토늄 24~32kg을 추출해 3~5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다음 해인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하에서 처음으로 플루토늄 방식의 핵무기를 실험했으며 2009년 5월 25일에는 같은 방식으로 제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1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1킬로톤(kt, TNT폭약 1천 톤)이었고 2차 핵실험은 2~6킬로톤가량으로 추정됐다. 특히 북한은 제네바 합의로 주요 핵시설이 동결돼 플루토늄 생산이 어려워지자 그때부터 우라늄탄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늄탄 개발에는 파키스탄의 가우리 미사일 개발에 북한이 결정적인 도움을 준 대가로 그 나라로부터 핵심기술을 이전받았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북한은 지난 2010년 11월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대규모로 갖춘 영변 핵단지 내 시설을 공개하며 “원심분리기 2천 개가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은 2012년 4월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수정 보충된 헌법 서문에 “김정일 동지께서는 선군정치로 우리 조국을 핵보유국으로 전변시켰다”고 명시, 핵무기 보유를 공식 인정했다. 이러한 50여 년에 걸친 북한의 핵개발 노력은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한 번 한반도를 위협했다.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 억제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013년 3월 8일,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15개 이사국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 회의를 열어 ‘핵·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의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결의 2094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당시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는 지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23일 만에 나온 것으로, 북한의 핵·미사일과 관련된 6번째 결의였다.

최근 들어 북한의 4차 핵실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군 정보당국에 따르면 5월 15일 현재 기술적으로 완료단계에 이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한주민들은 이미 북핵관련 뉴스에 내성이 생겨 무디게 반응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그 한번이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해치고, ㅂ구한 주민들은 핵실험이 반복될 때마다 알게 모르게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정부와 국제사회의 노력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터진 1993년 5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한 윌리엄 페리 미국 국방성 부장관은 예방을 마친 후 “북핵 문제의 해심 당사국이 남한과 북한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시절 남한은 핵문제의 당사국이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였다.

김영삼 정권의 뒤를 이은 김대중 정권은 북미 양자회담을 북핵문제의 중심 협상 틀로 보았다.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강조하면서도 북핵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북-미 관계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일례로 북핵문제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같은 해 ‘미북 공동 코뮈니케’에서는 심도 있게 논의된 것을 들 수 있다.

이후 노무현 정부는 6자 회담에 동참하면서도 북핵문제는 6자 회담 안팎의 북-미 관계임을 강조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21차례나 시행된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남측이 핵문제만 거론하면 북측은 딴청을 피워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등 북한은 남한과는 핵에 관해 논의를 피하려 했으므로 남북대화에서 북핵문제가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북측이 남한정권의 구상을 간파한 대응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시기는 6자 회담의 틀 속에서만 북핵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그랜드 바겐’이나 ‘비핵 개방 3000’의 정책에서 드러나듯이 북핵에 관한 주도권을 한국정부로 돌려오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남북 대화를 추진할 당시 북핵문제의 논의가 중요한 조건이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북핵정책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최근 들어서는 북핵문제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 이외에도 중국의 영향력이 강조되고 있다. 평양광복지구, 나선, 황금평 등 북한 내부의 독점 개발,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90% 가까이 된다는 점, 그밖에 북한의 대북 식량지원 등이 그 이유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적인 사례로는 2003년 2월 기술적 어려움을 이유로 북한에 석유공급을 3일간 중단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중국의 조치는 북한 길들이기의 성격이 강한 조치로 알려 있으며 실제로 북한정권은 중유공급 중지로 인해 큰 곤욕을 치렀다. 그러나 북한은 7개월이 지난 2003년 10월 원자로를 재가동하였고 플루토늄을 추출하였다. 이는 중유공급 중단 직후 중국으로부터 파견된 대표단의 ‘플루토늄 추출과 같은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라는 요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통일연구원의 조사로는 중국이 북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는 있지만, 그만큼 중국이 북한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는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강경한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부담을 감수하느니 현 상태를 유지하는 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2014년 3월 헤이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그렇게도 북핵불용의 의지를 강조하고, 중국을 의장으로 하는 6자 회담 당사국들이 그렇게 위협을 해도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자꾸 꺼내고 있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한국, 미국, 중국 모두가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만큼 북한이 핵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국들이 협력하여 6자 회담이라는 틀을 만들어 해결을 시도해 보았고, 중국도 북핵을 불용하는 입장을 적극적이고 반복적으로 피력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딜레마가 존재하는 한 북핵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세계 각국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북한은 계속해서 핵, 미사일 실험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은 ‘핵-경제 병진 노선은 만능의 보검’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남측이 피해망상과 체제대결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핵무기보유국들만은 군사적 침략을 당하지 않았다”, “핵억제력에 기초해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역량을 총집중할 수 있다”, “핵억제력을 억척같이 다져나가는 그 자체가 최고의 경제건설”이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 선전을 통해 핵카드를 부각시키고 있다.

평화적 해결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 위해 기도


한국정부와 국제사회의 이러한 노력과는 달리 기독교계는 북핵문제에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핵과 관련된 교계의 연구를 검색해보면 핵발전에 대한 환경신학자들의 연구가 대부분이다. 북핵문제가 갖는 심각성과 관련할 때 한국교회의 관심은 매우 적은 상황이다. 그나마 다루어진 핵무기 관련 연구는 대부분 평화신학 차원의 연구이다.

마태복음 26장 52절의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리라”는 말씀에 근거를 둔 기독교 평화주의는 철저한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주장한다. 예수께서 부정함 앞에서 희생을 감수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남한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대화와 설득밖에 없다. 여러 압력들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북핵문제를 비롯한 세상의 악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기독교 평화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해결한다. 그들에 따르면 세상의 악을 심판하시는 분은 재림하실 예수님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밖에 없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결국 북핵문제도 예수님의 최후심판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 또한 종말론적 승리와 인간의 현실적 책임의 관계에 관한 문제에 있다. 악한 국가의 정권 아래서 자유와 평화를 잃어버린 채 고통받는 이웃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구원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이는 현실에 대한 무책임한 대안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미국 디트로이트의 목회자였던 라인홀드 니이버는 “이러한 평화주의적 입장이 악한 현실에서 이웃이 당하는 현재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입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였다.

평화주의는 성경의 중요한 정신 샬롬을 반영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니이버가 주장하듯 정의가 없는 평화는 무의미하다. 북한과의 평화공존도 중요하다. 하지만 ㅂ구한체제의 정의롭지 못함과 폭력성에 대해서 고치도록 지적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북핵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평화적으로 접근하거나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접근해온 경향이 있다. 한편은 너무 이상적인 접근이고 한편은 너무 현실적인 접근이었다. 우리에게는 이상은 추구하되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까지의 추이를 지켜보아 부한 정권은 핵을 절대로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을 제외한 6자 회담의 나머지 당사국들이 북핵포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각국의 다른 사안들로 인해 역량을 집중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도 있다. 유일체제 북한의 전략적 치밀함도 무너뜨리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로 공략할 지점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그를 위한 국제사회의 여러 활동, 협상을 비롯한 제재와 압박 등이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이에 대한 한국정부와 국제사회의 지혜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북한 내부 정책-전략 결정 시스템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곤고하고 치밀한 듯 보이는 북한의 전략의 약점은, 그만큼 북한 전략의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이리도 집요하고 치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와 6자 회담 참여국들이 북핵문제를 포기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북핵 해결의 중요한 타이밍들을 놓쳐왔지만, 국제정세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북한의 의지가 강한 듯 보여도 국제사회는 ‘동결→불능화→폐기’를 위한 노력을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 국제사회는 확실한 금지선을 설정하고 강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핵문제로 인한 국제적 긴장 속에도 북한 주민들이 받는 고난이 최소화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NGO사역자들, 국경사역자들, 국제기구들이 창의적 방법을 통해서 북한을 공략하고 그것이 주민들에게 이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픈도어선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