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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보위부 감옥에 세워진 ‘지하교회’

[간증] 故 김익두 목사 손자며느리 박한나 목사

기사입력 :2018-04-18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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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서 내가 만난 하나님'(하)

17년째 전 세계 최악의 기독교 박해국으로 지목된 북한에서 지하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중 그가 만난 예수를 부인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예수를 전하기 위해 북한에서 10곳이 넘는 감옥을 전전하면서도 믿음을 지켜낸 탈북인 목사의 간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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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가정이 복음을 알게 된 것은 남편 덕분입니다. 남편은 중국에 가서 미국에서 오신 한인 김동식 목사님(2000년 1월 북한으로 납치, 2001년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망)을 알았습니다. 하루는 김동식 목사님이 남편에게 3천 원을 주셨습니다. 같은 교회에 있던 교포 집사님이 저희 남편 주머니의 그 돈이 욕심 나서 김 목사님이 3일 동안 출장을 가신 동안 남편을 공안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와서 저희 남편을 잡아갔고, 그 집사님은 고발한 값으로 3천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보위부에 가면 어떻게 되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중국 감옥에 있을 때 핸드폰을 빌려 중국에 있던 저희 이모에게 전화 걸어 내가 어떻게 돼서, 누구 때문에 잡혀가니 만일 후에 우리 가족을 만나면 꼭 전해달라고 말하고 끌려갔습니다.

북한 보위부에서는 정치범이라고 하면 절대 면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가족들이 “(남편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데 면회 좀 시켜달라”고 간부에게 사정해서 4명이 갔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자고 일어나면 ‘누구네 아버지가, 누구네 어머니가, 누구네 딸이, 아들이 어젯밤에 죽었대’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그것이 동네 뉴스였습니다. 다 굶어 죽은 것입니다. 간부가 면회 오라고 했는데, 저희 집도 다 도둑 맞아 가지고 갈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이들 옷을 입히고, 옥수수 가루로 떡 몇 조각 만들어서 보냈습니다. 너무 작아서 전 차마 갈 수가 없어서 아이들만 보냈습니다. 가족이 모이면 작은 방에서 작은 상에 옥수수도 나눠 먹는 것이니, 함께 나눠 먹으라고 했습니다.

저희 남편은 면회간 아들의 손을 밑으로 잡아당겨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도청 장치가 있어 말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라. 예수님은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확실히 살아계신다.’ ‘눈물 나고 안타깝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예수님께 기도하면 너희 기도를 들어주신다.’ ‘내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면 꼭 이 땅을 떠나서 중국에 가서 ○○교회 김○○ 장로님을 찾아가라. 너희가 찾아가면 하나님께서 다 앞길을 열어주실 거다.’ 이것을 손바닥에 썼는데 면회 마치고 집에 오면서 아들이 흥분되어 집 문을 열자마자 말했습니다. “엄마! 아버님이 예수님을 믿으래요. 엄마,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확실히 계시고, 우리가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정직한 분인데 우리 아버지가 전한 예수님, 우리도 믿어봅시다.”

그날부터 우리는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는지도 몰랐지만, 마음의 소원과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었고, 놀랍게도 그날그날 응답됐습니다. ‘세상에 예수님이 없고, 미신이라고 배워왔는데 세상에 속아 살았구나!’ 그러면서 저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딸이 26살의 나이로 1997년 5월 6일 굶어서 죽었습니다. 여기 분들의 생각은 ‘일하기 싫어서 죽었는가’ 생각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고 (북한은) 직장에 나가 일을 해도 배급을 안 주고 월급을 안 주니 사람들이 매일 밤 죽어나갔습니다. 세 살 짜리 아기들도 “어디 가서 주워먹으라, 빌어먹으라”고 엄마가 다 밖에다 내놓기 시작했고, 시장에 갖다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다 흩어지고 굶어 죽고 남은 사람이 자기 혼자니까 빵 몇 개하고, 술 한 병 하고 자기 집을 바꾸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희 집 물건이 다 도둑 맞고 김칫독과 이불만 남았는데, 저희 딸이 그걸 뜯어서 시장에 내다 팔아 식량으로 옥수수를 사보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수술 후유증으로 앉아 있고 걷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나쁜 사람을 만나서 다 사기 당했습니다. 집에 들어오기 미안해서 밖에서 헤매다가 집에 왔는데, 2주 넘게 살다가 굶어 죽었습니다.

딸이 죽기 며칠 전 말했습니다. “엄마, 남조선이 여기서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에요. 그 땅에는 자유가 있어요. 나는 정말 남조선에 가고 싶었지만, 엄마가 앓고 있고 어린 동생이 있어 갈 수 있어도 못 갔어요. 엄마, 아무래도 나는 희망이 없고 살 수 없는 것을 알아요. 정말 이 땅에 소망이 없으니 어리석게 나처럼 있으면 죽게 될 거니, 내가 죽으면 꼭 중국에 가고 갈 수 있으면 남조선에 가세요. 잘 살고 배부를 때 나를 생각해주세요.” 저희 딸이 그런 말을 남기고 며칠 후에 죽었습니다.

북한은 5~6명이 모이면 밀정이 있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남자들이 술 먹으러 가면 여자들이 제일 싫어합니다. 술 좌석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어느새 온 가족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고 죽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험한 곳에서 하고 싶은 말도 가족끼리 할 수 없는 형편에서 사람들이 헤매고 있던 때입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붙잡혀가고 그렇게 험한 세상입니다. 그곳에서 저희 딸은 “꼭 남조선 가라”, “후일에도 가서 잘살면 나를 생각해달라”고 말하고 죽었습니다.

남편은 감옥에서 한인 목사님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남조선 안기부 간첩’ 죄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인간의 입으로도 외울 수도 없는 고문을 많이 당했다고 합니다. 그(감옥) 안에서는 일회용 종이컵만한 다 썩은 옥수수 밥 덩이를 주는데 남편은 자기 밥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먼저 죽겠다. 좀 먹으라”고 말하면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중국에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봤고, 좋은 구경도 많이 했고, 나는 죽으면 이제 천국이 있기 때문에 괜찮다. 그러나 하나님 모르고 육신을 위해 고통 받고 살다가 죽어도 지옥불에 가겠느냐.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 그러면 가족도 구원 받는다”고 복음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남편은 낮에 죽도록 고문 당하고 다 퍼져서 감옥에 쳐 넣으면 밤에는 질질 끌고 다니면서, 기어 다니다시피 하며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무서운 보위부 감옥에 저희 남편을 통해 지하교회를 세워주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난 지하교회 성도들이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감시하니까 낮에는 못 오고 밤에 와서 창문을 두드리고, 감옥에서 남편이 했던 일들을 말하면서 “세상에 그렇게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을 정말 몰랐다”고, “그 안에서 고문당하고 핍박받고 멸시받고, 그분이 당한 것을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할 수가 없다. 가족들이 두고두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냐”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남편이 만일 살아나오면 그(감옥) 안에서의 고통을 본인 입을 통해서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보위부에서 찾아서 남편을 면회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의자가 쭉 있는데, 조그만 아이 같은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다리가 막 붓고, 얼굴이 고문을 받아서 터지고 멍들고, 얼굴 같지 않은 사람이 앉아 있어서 ‘저 사람 무슨 죽을 죄를 지어서 저기 앉아있는가’ 찬찬히 봤습니다. 눈은 깜빡 거리고 있어서 ‘저 사람 아직 죽지 않고 살았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북한 보위부 간부가 남조선의 큰 간첩을 잡았다고, (그 지역에) 내려와 6개월 넘게 있었습니다. 그 동안 무슨 임무를 받았는지 보위부서 말하라고 그렇게 고통을 주고 갔다고 했습니다.

감옥에서 남편하고 할 말 있으면 하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왜 안 오냐”고 하니까, “저 뒤에 있지 않느냐”고 가리켰습니다. 들어올 때 문 옆에 앉은 살이 다 빠지고 온 몸에 살을 칼로 긁어도 1kg도 안될 것 같은 그 사람이 제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봐도 본인의 모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계속 울고, 간부에게 집에 남편을 내보내달라고 하니 “저 새끼는 당과 수령을 배반하고 저 혼자 잘살겠다고 중국에 도망갔다가 남조선 간첩 안기부를 만나 간첩 임무를 받아 왔다”고, “그렇기 때문에 집에 갈 수 없다. 찾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 될지 몰랐습니다. 며칠 후 남편은 순교 당했습니다. 저는 ‘남편이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진리를 찾았구나, 저 사람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저 사람이 하던 일 다 못하고 간 일을 내가 꼭 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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