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간디(가운데)는 상층 카스트를 대표하고 힌두 철학에 충실했다. 인도에서 흔한 흰색 면으로 된 구루따 파자마를 입었다.
정치인의 손동작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함의를 지닐 때가 많습니다. 1980년대 초반 인도 주재 대한민국 대사와 네덜란드 대사는 함께 부탄 왕을 만나러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게 되었는데요. 일등석에서도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항공사 직원과 며칠 동안 씨름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웃의 왕을 만나러 가는 비행기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개인의 위세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힘을 가늠하는 정치적인 메시지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간디와 초대법무장관이었던 암베드카는 서로 비교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간디가 상층 카스트를 대표하고 힌두교의 철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면, 암베드카는 불가촉천민을 대표하면서 서구식 사상을 주창한 것으로 비교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복장에서도 정치적인 메시지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요, 간디는 인도에서 흔하게 입는 흰색의 면으로 된 구루따 파자마를 입은 반면에 암베드카는 서양식의 복장을 하고 다녔습니다. 간디는 복장에서도 자신이 인도사람이고 힌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나중에 기운이 없어 지팡을 하고 다닐 때도 평범한 막대기를 들고 다님으로써 인도인의 기상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많은 사진들을 보면 간디는 웃옷을 벗고 있을 때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간디가 기차를 타고 한 도시로 갈 때였습니다. 목적지가 다가올 무렵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가를 지날 무렵 많은 아낙네들이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여인은 가난한 살림 때문이었는지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서 가슴이 드러날 지경이었고 기차가 지나가자 부끄러운 듯 가슴을 가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간디는 자기의 웃옷을 벗어서 강가에 띄워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암베드카
▲암베드카는 불가촉천민을 대표하면서 서구식 사상을 주창했다. 카스트제도의 압력에 저항하는 의미로 서양식 복장을 하고 다녔다.
여자에게 남자의 웃옷이 소용될 리가 없고 그 여인이 그 옷을 주워서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만, 그 이후로 간디는 웃옷을 입지 않고 정치적인 유세를 하러 다녔는데요. 간디가 웃옷을 벗고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가난한 여인을 긍휼히 여기는 위대한 지도자로 인식을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간디의 행동은 상당히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디의 정치적인 메시지가 힘이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도 자신의 메시지를 따라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웃옷을 벗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힘없는 할아버지가 어떻게 인도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인도의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는지 그것도 자신의 철학과 삶이 일치된 삶을 살면서 강력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암베드카가 서양식 복장을 하고 다닌 것은 불가촉천민이 받아온 사회적 압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하게 하는 카스트제도의 압력을 저항하는 의미요,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하면 신분이 상승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종족들과 동지들에게 선포하는 정치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는 불교를 자신의 종교로 정하게 되었고 수많은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브라이트 리(Bright Lee) 선교사